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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목록  >  공지사항  >  좋은글 > 좋은글

좋은글 | 좀 길지만 너무 재미있어 올립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은정
작성일 12-08-22 21:31 | 조회 1,844 | 댓글 5

본문

엄마의 정체
                                      신연호(동화작가)

 엄마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어떨 때 보면 엄마는 마법사같다. 남의 마음까지 보여 주는 거울이나 구슬을 가진 마법사, 그래서 내 마음을 환하게 들여다보고 뭘 하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나타나서 잔소리한다.
 그러니까 내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 '이제 숙제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을 때, 엄마는 문을 벌컥 열고 말한다.
  "숙제 먼저 하고 놀라 그랬지? 장난감 내려놓고 책상에 앉아, 얼른!"
  '하려고 했는데....'
 밤에도 마찬가지다. 양치질하려다가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감았을 때, 엄마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차시훈! 양치질 안하고 자면 이 다 썩는 거 몰라? 양치질해, 얼른!"
 그런데 내 마음이 참 이상하다. 엄마의 "얼른!" 소리를 들으면 숙제나 양치질하려던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린다. "얼른!"은 내 마음을 달아나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다.
 어떨 때 엄마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 같다. 당연한 일로 화를 낸다. 오늘도 그랬다. 일요일이라서 친구들이랑 실컷 축구를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 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우리 편이 1:4로 져서 기분이 나쁘고 온몸이 난로처럼 뜨거워 힘들었다. 양말을 벗어서 얌전하게 두었다. 일어나면 빨래 통에 갖다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새 방에서 나와 "얼른!" 주문을 외쳤다.
  "놀다 왔으면 손발 먼저 씻어야지 왜 그러고 있어? 먼지투성이로 뒹굴뒹굴하면 깨끗이 청소한 거실은 어떻게 되니? 양말은 빨래 통에 넣고, 얼른!"
 나는 그때까지 기분이 나아지지도, 열이 식지도 않아 조금 있다 하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내 엉덩이를 찰싹 치면서 먼지가 난다고 꾸지람을 보탰다.
 먼지 묻은 엉덩이를 때리면 먼지가 풀썩하는 건 당연하다. 엉덩이를 때린 것도 내가 아니라 엄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지,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아이 참, 조금 있다 할 거란 말이야!"
 그랬더니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고 펄펄,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지 세모나게 뜨나? 아님 네모나게? 우리나라 사람, 아니 지구인은 다 눈이 동그랗잖아.
 내가 잔소리에서 풀려난 것은 전화 덕분이었다. 엄마는 전화기를 귀에 대더니 세상에서 제일 우아한 여왕님처럼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럼요, 저도 덕분에 잘 지내요.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축하해요. 호호...."
 정체를 숨기느라 애쓰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지구에서 나고 자랐다면 나처럼 언린아이일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 내 마음을 잘 알아줘야 하는데, 도대체 엄마는 어느 별에서 살았던 거야?
 방에서 씩씩거리는데 누나가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지우개를 찾으며 슬쩍 물어봤다.
  "누나는 엄마가 초능력자나 외계인 같다는 생각 안 해 봤어?"
  "아! 엄마는 외계인!"
  "진짜?"
  "그 과자 먹고 싶다고?"
 에이 정말, 나는 말도 하기 싫어서 누나한테 등을 돌려 버렸다.
  "너, 엄마한테 자꾸 대들지 마. 엄마 화나면 나도 피곤하단 말이야."
 지우개를 빌리러 왔다던 누나는 빈손으로 방을 나갔다.
 얼마 뒤, 아빠도 내 방문을 열었다.
  "아빠, 엄마가 초능력으로 아빠 마음을 들여다본 적 없어? 일을 막 방해한 적은?"
  "있어. 아주 많아. 엄마는 귀신이거든."
  "진짜?"
  "그래. 엄마는 눈치가 빠라서 귀신같이 다 알아맞혀. 그러니까 너도 무슨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걸. 너 혹시 잘못한 것 없어?"
 잘못한 건 없지만 갑자기 물어보니까 없다는 말이 목에 탁 걸려서 안 나왔다.
  "축구하다가 학교 유리창 깬 건 아니지? 아니면 친구를 다치게 했거나, 놀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잖아."
 아빠는 아니라는데도 꼬치꼬치 물었다. 축구를 오래 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묻기를 멈췄다.
  "그래도 엄마한테 짜증 부리지 마. 일요일은 좀 편하게 쉬자."
 어휴, 누나랑 아빠는 눈치가 꽝이다. 그럼 도대체 누구한테 어마의 정체를 묻지? 아! 청주 할머니. 할머니는 엄마를 낳았으니까 잘 알겠지만 가르쳐 주지 않겠구나. 비밀이 있다면 엄마에게 숨겼을 텐데 나한테 말해 줄 리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엉클어졌는데 나를 뺀 식구들이 거실에서 뭐라고 소곤거렸다. 궁금해서 문에 귀를 대고 들어 보았다.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시정이 때는 덜했는데...., 시훈이는 생활습관이 잘못.... 나도 힘들어.... 아우, 알았어."
 그걸로 끝. 조용하니까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때, 문이 불쑥 열리며 엄마 얼굴이 나타났다.
  "시훈아아~~"
 왜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지?
  "심술 그만 부리고 나와. 짜장면 시켰어."
 짜장면 소리에 배가 꼬르륵거렸다.
 앗! 안돼. 그깟 짜장면 때문에 화를 풀 수는 없었다. 나는 배를 꾹 누르며 못 들은 척했다.
  "안 먹을 거면 그만 둬. 탕수육도 시켰는데."
 아! 탕수육은 내가 세상에서 세 번째쯤으로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는 고개를 빼고 거실을 보았다. 엄마를 보려던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빙그레 웃는 엄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휴. 바보 같은 내 마음. 엄마의 '빙그레'마법에 화난 마음은 멀찌감치 달아나 버렸다.
  "탕수육 큰 거 시켰지?"
 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나는 엄마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댓글목록

노정희님의 댓글

노정희 작성일

아! 그 외계인이 저예요. 맨날 아이들과 부딪히고 마음 상하고...
아이들만 마음이 상할까요? 외계인 엄마는 더 상한답니다.
이제는 쇠약해진 왕따 당하고 무시당하는 외계인입니다.
외계인의 말로는 서글픕니다. 흑흑흑....

이은정님의 댓글

이은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래도 그런 외계인을 속으로는 넘넘 사랑한답니다.
저도 애들 키울 때 늘 '한박자만 더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답니다.
이제는 모두 돌아보고 웃으며 고마워하죠.
샘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착한 외계인이라 해줄 거예요.

권문주님의 댓글

권문주 댓글의 댓글 작성일

한박자만 기다리는게 어디 그리 쉬운가요 ^^
저같은 사람은 성질도 급한데..
숨 넘어가서 하루에도 몇번씩 구급차 불러야하는데요..ㅎㅎ

단장 이은정님의 댓글

단장 이은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래도 동그랗게 뜬 눈을 세모나 네모로 만들지는 마세요^^

이복희님의 댓글

이복희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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